희정당(熙政堂)-熙政 : 화락한 정치
희정당은 원래 창덕궁의 내전에 속한 건물로 침전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궁궐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연산군 2년 궁내의 숭문당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면서 당호를 희정당이라고 바꾸면서 창덕궁의 한 건물로 되었다. 희정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원년에 창덕궁이 재건될 때 다시 지어졌으며, 다시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에 재건되었다. 이 때에는 인경궁의 건물을 철거한 자재로 세웠다. 순조 33년 또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재건되었으나, 1917년에 화재로 타 버리고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이건하여 다시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이 여러 차례 불에 탔다가 재건되면서 규모도 달라지고 건물의 용도도 바뀌었는데, 처음 인조 때 재건될 때에는 15칸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920년 다시 지으면서 45칸 짜리 대형 건물로 바뀌었다. <동궐도> 에 그려진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이 모습과 달리, 앞면 11칸 옆면 4칸으로 한식 건물에 카펫,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총석정절경도> <금강산 만물초승경도>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이 생겼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설비되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을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