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樂善齋)-樂善 : 선(善)을 즐긴다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느껴지는 곳이다. 낙선재 권역에서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이 후궁 경빈김씨와 할머니 순헌왕후를 위해 마련하여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지어진 장소이다.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낙선재는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되었다. 이후 영친왕 이은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1966년부터 1989년까지 기거하였다. 낙선재 본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기둥 위 짜임은 간소한 초익공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낙선재의 정문은 장락문(長樂門)으로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궁궐 안에 사대부주택형식으로 지은 건물로는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궁궐침전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의 장식이 특히 주목되며, 조선 후기 건축 장인(匠人)들의 축적된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조선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된 역사성도 중요한 건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