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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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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 (宣政殿)- 宣政 : 정교(政敎)를 선양(宣揚)한다

선정전은 임금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선정전은 조선 초기에 창건되어 오랫동안 편전(便殿)으로 이용되어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으며, 후기로 가면서 역대 왕들의 빈전, 혼전으로 쓰이면서 희정당이 편전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처음에는 조계청(朝啓廳)이라 불렸으나,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건물에서는 왕과 왕비가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는데, 성종 때 왕비가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고 친히 누에를 치는 일을 모범으로 보였으며, 왕이 주연을 열기도 하였다. 인조반정 때 창덕궁에 큰 불이 났을 적에 소실되었고, 1647년(인조 25) 에 중건되었다. 그 뒤 1674년(현종 15)에 수리한바 있고, 1803년(순조 3) 12월에 선정전 서행각(西行閣)이 소실된 것을 다음해 12월에 복건(復建)하였다. 장대석으로 월대(月臺)를 쌓고, 상부를 모난 박석을 깔아 마무리하고, 양끝에 드무(넓적하게 생긴 독)를 놓았다. 월대 위에는 장대석 한벌대의 기단을 쌓고 원형의 다듬은 돌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내부 앞쪽에만 고주(高柱)를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면·후면과 측면 어간에는 띠살창호의 4분합을 달고, 측면 전후 툇간에는 2분합을, 동·서 전툇간과 후면 동측칸에는 2분합의 판문(板門)을 달았다. 창덕궁 안에는 청기와를 덮은 건물이 몇 채 있었으나 현재는 선정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조선 중기 공포의 형상을 잘 남기고 있어 중요시된다.